선을 긋는다는 것
선을 긋는다는 것— 창작이 마음을 정리하는 방식에 대하여1. 아무 의미 없이 긋기 시작한 선 하나어느 날 저녁, 뭘 해도 마음이 어지러운 날이었다. 말을 해도, 글을 써도 정리가 안 되던 그때, 나는 갑자기 펜을 잡고 종이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의도도 없고, 형태도 없이 그냥 긋는 선. 길고 짧고 굵고 가늘게,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손끝.처음엔 낙서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손이 마음보다 먼저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뇌가 아닌, 감정이 직접 펜을 쥐고 있는 것 같은 느낌.그리고 나는 알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그은 선이, 내 감정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창작은 때때로 ‘하려는’ 것이 아니라, ‘흘러나오는’ 것이다. 선 하나가 감정을 설명하진 못해도, 적어도 감정을 흘려보내는..
2025.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