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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일기처럼 감정을 담는 법

by 얀쇼밍키 2025. 7. 18.

어른들이 아이들을 이해할 때, 그림보다 더 직관적인 도구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끄적이는 선 하나에도 힘을 얼마나 주었는지, 길이는 어느 정도인지, 부드러운지 혹은 강한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종이 한 장과 연필 하나로 얼마나 많은 마음을 보여주는지 겪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림일기처럼 감정을 담는 법
그림일기처럼 감정을 담는 법

 

1. 말로 하기 어려운 마음, 그림으로 흘러나오다

“오늘 뭐가 제일 좋았어?” 아이에게 그렇게 물어보면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하는 날이 있다. 특별히 기분이 나빴던 것도 아닌데, 그저 말이 나오지 않는 날.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는 데 아직 서툴다. 아니, 어쩌면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아이가 조용히 크레파스를 꺼내 들고, 도화지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한다. 커다란 태양 아래 알록달록한 꽃을 그리기도 하고, 종이를 가득 채운 파란색으로 빗줄기를 그리기도 한다. 말 대신 손이 움직이고, 색이 감정을 말해준다. 그림 속 세상은 아이의 마음이 머무는 자리다.

아이에게 감정은 정리되지 않은 채 뭉쳐 있는 선물 상자 같다. 그걸 풀어내는 가장 편한 방법은, 생각보다 ‘그림’일 수 있다. 말로 하기에는 낯선 감정들도, 그림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2. 미술치료가 아닌, 감정의 일상화

요즘은 ‘미술치료’라는 단어가 익숙해졌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분석을 하기도 한다. 물론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꼭 치료처럼 무거울 필요는 없다. 감정 표현은 때로 일기처럼, 밥 먹고 잠자듯 일상이 될 수 있다.

매일 한 장씩 그림을 그려보는 일. 기분이 좋은 날은 밝은 노란색과 하늘색이 스케치북에 번지고, 속상한 날은 검정과 회색이 어지럽게 얽힌다. 아이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게 되고, 그 감정이 부끄럽지 않다는 걸 배운다.

이렇게 예술이 일상이 되면, 감정도 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굳이 말로 다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림 한 장이 마음을 대신해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면, 아이는 자기만의 ‘감정 언어’를 만들게 된다.

 

3. 아이의 그림일기장이 되어주는 어른

어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크지 않다. 그림을 보며 “잘 그렸네!”가 아니라 “이거 그릴 때 기분이 어땠어?” 하고 물어봐주는 것. 아이의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들어주는 것. 그림을 ‘해석’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태도. 그게 아이에게는 가장 큰 감정의 안전지대가 된다.

때로는 아이가 그린 그림이 너무 복잡하거나 추상적일 수도 있다. 그럴 땐 굳이 해석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림은 마음의 거울이지만, 거울을 통해 아이를 바꾸려 해선 안 된다. 그저 오늘 하루, 아이가 그림 속에서 어떤 색을 고르고 어떤 모양을 그렸는지 함께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이의 마음은 말보다 먼저 색으로, 모양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언어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다. 그림일기를 쓰듯 감정을 담아내는 아이 곁에서, 하루하루 감정을 표현하는 게 당연하고 편안한 일이 되도록 지켜봐주는 것. 그게 어른이 할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동행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