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기분은 무슨 색이었을까
— 감정의 팔레트에서 나를 고르다
1. 감정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지금 기분이 어때?”라는 질문을 들으면, 가끔은 대답하기가 어렵다.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그냥… 뭐랄까, 뿌연 날씨 같은 기분. 그럴 때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 내 기분을 색으로 표현하면 무슨 색일까?”
이 질문은 의외로 감정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게 해준다. 슬픔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감정도, “진한 회색이야”라고 말하면 이상하리만치 구체적이 된다. 분노는 빨간색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의 분노는 검붉은 보라색일 때가 많다. 답답함은 벽돌색, 무기력은 연한 회색빛 하늘색, 그리고 들뜬 감정은 형광 노랑처럼 반짝인다.
색은 말보다 빠르고, 말보다 복잡한 감정을 담을 수 있다. 그래서 색으로 감정을 표현해보는 일은 일종의 감정 정리 도구가 된다.
2. 색을 고르면 마음이 조금 정리된다
심리 상담에서 종종 사용하는 기법 중 하나가 ‘색 선택 테스트’다. 화려한 색종이나 컬러칩을 펼쳐놓고, “지금 가장 끌리는 색을 골라보세요”라고 말한다. 그 색에는 이유가 없다. 그냥 고르면 된다. 그리고 선택한 색을 보고 이야기해본다. 왜 그 색인지, 그 색이 어떤 기분을 주는지.
이건 단순한 놀이처럼 보이지만, 사실 감정 인식 훈련이기도 하다. 자신의 감정을 직접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도, 색을 통해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나도 이걸 혼자서 자주 해본다. 휴대폰 배경을 그날의 기분에 따라 바꿔보거나, 일기장 귀퉁이에 그날의 색을 그어본다. 심지어 ‘오늘의 기분 컬러’를 드로잉 앱에서 찍어 저장해두기도 한다.
그렇게 쌓인 색들이 내 감정의 히스토리가 된다. 언어로 썼다면 몰랐을지도 모를 미세한 변화들, 그건 색이 훨씬 민감하게 기억해준다.
3. 오늘의 나는 어떤 색에 머물렀을까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아마도 짙은 연보라색 같은 기분이다. 완전히 평온하지도 않고, 뭔가 복잡하게 섞여 있지만, 그 안에 가만히 머물러도 괜찮은 느낌. 오늘 하루의 나를 요약하면 그 정도.
사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기분이 꼭 좋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기분이 무슨 색인지 알고만 있어도, 그건 충분히 나를 돌보는 일이다.
어떤 날은 스스로에게 너무 무심했다가, 하루가 끝나갈 무렵, “오늘은 무슨 색이었지?”라고 되묻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결을 되짚게 된다. 그건 마치 무심코 남긴 색 연필 자국을 나중에 다시 바라보며, 그날의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상기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늘 말로 표현하려고 애쓰지만, 사실 말보다 앞서는 건 느낌이고, 느낌은 색에 가깝다. 그러니 가끔은 감정을 색으로 남겨보는 건 어떨까. 그 색 하나가, 오늘의 나를 충분히 기억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