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본 김환기 전시, 의외의 감동
아이들과 함께 미술관에 간다는 건 사실 약간의 모험이다.
그림 앞에서 3분도 안 지나 "배고파", "언제 가?"라는 소리를 듣게 될까 봐 걱정된다.
하지만 어느 날, 주말 오후 김이안과 김시호를 데리고 김환기 전시를 보러 갔다.
그리고 나는 예상치 못한 감동을 받았다.
아이들의 눈을 통해 본 김환기의 세계는, 어른의 시선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1. “왜 이렇게 점이 많아?”로 시작된 대화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시호가 물었다.
“엄마, 왜 이렇게 점이 많아? 누구 물건이에요?”
아이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정곡을 찔렀다.
김환기의 점화 시리즈는 의도적으로 설명을 배제한 작품들인데, 아이는 그 점들에 ‘주인’을 상상했다.
이안이는 점 앞에서 손가락으로 점 개수를 세더니 “엄마, 이건 우주야”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맞다. 이건 우주다.
하지만 나는 ‘점묘화’, ‘색채의 반복’ 같은 해석에만 매달려 있었지, 이 그림이 ‘우주처럼 느껴지는지’는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2. 아이들의 상상력이 깨운 감상
“여기 별똥별 떨어졌어.”
“이건 수박씨 같아.”
“이거 김환기 할아버지 기분 나쁠 때 그린 거야?”
아이들의 말은 엉뚱했지만, 그 안에는 작품과의 진짜 대화가 있었다.
미술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작가론을 아는 것도 아닌 아이들이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아무 여과 없이 표현했다.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지식으로 보는 미술’에 익숙해졌는지 부끄러워졌다.
3. 짧은 집중, 오래 남는 인상
전시장을 돌며 아이들은 곳곳에서 앉고, 뛰고, 다시 멈춰 섰다.
그 중 한 점 앞에서 이안이가 조용히 서 있었다.
검푸른 점들이 촘촘히 놓인 화면.
나는 물었다. “어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오래도록 그 그림을 바라봤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안이가 말했다.
“엄마, 그 그림은 좀 외로웠어.”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도 그 그림을 다시 떠올리며 마음이 찡했다.
우린 그날, 그 그림 안에서 같은 감정을 공유했던 것이다.
4. 아이와 감상을 나눈다는 것
어른들은 종종 미술 감상을 ‘해석의 문제’로 여긴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미술관 나들이는 그걸 ‘경험의 문제’로 바꾼다.
점이 뭔지 모르는 아이가 점을 보고 무언가를 느낄 때,
그건 해석이 아니라 ‘감응’이다.
그날 이후, 우리 집에는 김환기 엽서가 몇 장 더 생겼고,
아이들은 가끔 색연필로 ‘점으로만 된 그림’을 그린다.
그 그림에는 규칙도, 논리도 없지만,
김환기의 마음에 닿는 통로가 아주 조금은 열린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본 김환기 전시는 나에게 또 다른 감상의 문을 열어주었다.
작품 앞에서 꼭 뭔가를 ‘알아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아이들은 그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림 앞에서 같이 감탄하고, 질문하고, 조용히 서 있는 시간.
그것만으로도 예술은 이미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 그 말은 의외로 가장 작고 어린 목소리를 통해 들려왔다.